마을의 역사
선사시대에서부터 거주한 흔적을 찾아 볼수는 있으나 행정적 마을이 형성 되기 시작한 것은 130년 전으로부터 보고 있고 초기 주민들은 어업에 종사하며 거친 돌밭을 개간해 밭을 일구며 살았습니다. 1970년대 전성기에는 9개 자연부락에 1100명이 주민이 거주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천황산 8부 능선까지 모두 농경지였다고 합니다.
마을의 변화와 쇠퇴
대부분의 주민은 고구마 밭 농사나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다 어족 자원의 감소와 쇠퇴 현상이 나타나면서 지금은 섬의 중심지인 북구마을과 남구마을만 남아있습니다. 나머지 마을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한두 채의 집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두미도의 변화
쇠퇴해 가던 두미도에 활력을 불어넣은 계기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1984년 해저케이블이 두미도까지 연결되면서 전기가 들어온 것이고, 두 번째는 마을 간이 수도가 건설되면서 물 공급이 원활해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섬의 둘레를 한 바퀴 도는 9.29km의 임도(일주도로)가 건설되었습니다. 임도는 2007년에 착공하여 6년에 걸쳐 완공되었는데, 섬의 거친 바위로 길을 닦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고 합니다.
임도 건설의 효과
임도 건설 이전에는 남구마을에서 천황산, 대판마을까지 생필품을 운반하려면 배편을 이용하거나 지게를 지고 산길로 다녀야 했습니다. 그러나 임도가 건설되면서 20분 내에 도달할 수 있게 되어 고립되었던 마을이 연결되었습니다. 특히 북구마을에서 출발하더라도 임도를 통해 천황산을 오르거나, 섬 전체를 자동차로 쉽게 둘러볼 수 있어 많은 관광객이 섬을 찾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두미도
현재 두미도에는 약 70가구, 1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습니다. 주민 대부분은 북구마을과 남구마을에 모여 살고 있습니다. 두미도가 좋아서 정착한 사람들은 많지만 빈집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캐나다에서 이십여 년 동안 관광업에 종사하던 한호수 씨는 올해 초에 두미도에 반해 북구마을에 정착했습니다.
위치 및 지형:통영 바다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총면적은 5.03㎢이며 해안선 길이는 11km입니다. 육지 섬과 삼천포 사이에 있습니다.
자연 환경:동백나무,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등 난대림 수목이 울창합니다.
섬의 모양:가오리 한 마리가 북서쪽을 향하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며, 길쭉한 몸통에 작은 꼬리가 붙어 있는 형태입니다.
자연 경관
산:사막의 피라미드처럼 솟은 천황산(468m)과 투구봉(333m)이 있으며, 이들은 통영의 주산인 미륵산(461m)이나 욕지도의 천황산(392m)보다 높습니다.
조망:천황산에 오르면 사량도, 수우도, 욕지도, 연화도 등 한려수도의 크고 작은 섬들을 조망할 수 있어 트레커들이 많이 찾습니다.
물:산이 높지만, 험한 지형 때문에 우물이 솟지 않습니다. 골짜기마다 밭이 만들어져 물이 잘 흐르지 않습니다.
두미도의 문화
생활권:행정구역은 통영에 속하지만, 지리적으로는 남해군 사천에 가까워 생활권은 삼천포에 속했습니다. 오일장이나 결혼식 등도 삼천포에서 치러졌습니다.
이름의 유래:
전설:'미륵이 머물다가 숨어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문헌:조선왕조실록(성종 17년)에 '둔미도(屯尾島)'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름의 뜻:'둔미도(屯尾島)'는 '떼를 지은 꼬리털이 뭉쳐있는 섬'이라는 뜻으로, 섬의 모양새와 관련이 있습니다.
유물:1937년 통영 신라시대 금동여래상이 봉황 다리 아래에서 발견되었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